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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정

권정생 소년소설 「몽실언니」 현장 있다 - 안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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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27회 작성일 11-03-0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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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소년소설 「몽실언니」 현장 있다

-문학답사를 위한 밑그림



‘몽실의 얼굴은 둥글고 넓적하다. 코도 납작하고 눈은 작은 편이다’고 권정생은 묘사한다. 단발머리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몽실이를 생각하면 단발머리다. 이철수의 표지 그림의 탓이기도 하지만 그 시절의 가난한 집 딸들의 대표머리가 아닌가. 권정생은 몽실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첫 장편 「슬픈 나막신」에 나오는 ‘하나꼬’에서 확장한 것이라고 했다. ‘하나꼬의 눈은 초생달처럼 조그맣다. 이마 위에서 노란 단발머리가 나풀거린다’고 묘사했다. 몽실이의 뒤를 잇는 「초가집이 있던 마을」의 화순이도 ‘납작하고 동그란 얼굴이다. 눈도 동그랗고, 코도 동글납작하다. 저희 어머니가 가위로 깎은 단발머리가 흡사 뚝배기를 씌워놓은 것처럼 우스꽝스럽다’고 그리고 있다. 몽실은 실존인물이 아니라 전쟁으로 고통 받은 그 시대의 모든 딸들을 아우르는 인물이다. 하나꼬와 화순이를 닮은 그 시절의 모든 딸들의 언니가 몽실인 셈이다.

6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권정생은 안동보건소에 결핵약을 타러 나왔다가 어떤 아주머니를 만나 신세타령을 듣게 된다. 지금은 안동댐으로 수몰이 되고 없지만 월곡면 절강리에서 온 이 아주머니의 전쟁수난기를 들으면서 몽실언니를 집필할 계획을 세웠다.

몽실언니의 주 무대는 노루실과 댓골이다.

노루실은 일직면 운산장터에서 남쪽으로 5리 밖에 있다. 망호리의 폐교가 된 일직남부초등학교가 있는 골짜기다. 학교가 있는 왼쪽 마을이 노루실이고 오른쪽 마을은 비내미다. 시인 김용락은 권정생으로부터 “노루실은 비내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루실이 비내미가 아니라 한 골짜기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각기 다른 마을이다. 노루실의 실제 지명은 노래골이다. 말하고 듣기에 따라서는 노루골로도 통한다. 다만 골을 실로 바꾼 것이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옮겨갈 예정으로 있는 일직남부초등학교가 이곳에 있는 것도 인연으로 보인다.

댓골은 청송군 현서면 화목리에 있다. 골짜기가 대통같이 곧게 뻗어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이 곳은 권정생의 외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1946년 일본에서 돌아와 이 곳에서 약 2년 정도 살았다. 어머니를 유난히 좋아했던 권정생은 외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지녔다. 그렇지만 병고로 은거하며 살았던 그는 외가와 소식을 끊고 살 수 밖에 없었다. 이번 답사에서 그의 외사촌 누나가 대구에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알려지지 않은 외가 쪽 가계를 복원하는 단서를 찾은 셈이다.

몽실네가 해방 되고 돌아와 정착한 곳은 살강마을이다. 동생 종호가 죽고 아버지 정씨는 돈 벌러 나가고 없는 틈을 타서 어머니 밀양댁은 몽실이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한다. 댓골에 사는 김씨에게 개가를 한 것이다. 몽실은 여기에서 다리 병신이 되어 고모 손에 이끌려 노루실로 와서 친아버지 정씨와 살게 된다. 사정이 떳떳하지 못해 살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노루실에 터를 잡은 것이다. 살강마을은 고운사 근처에 있는 살가리(의성군 단촌면 구계리)를 염두에 두고 지어낸 지명이다. 보건소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살았던 절강마을과 겹쳐놓았다.

‘깡통을 들고 장터 마을로 갔다. 신작로를 걸어서 오릿길을 가야 한다.’는 장터 마을은 일직면 운산리 운산장터를 말한다. 노루실에서 딱 2km다. 기차 정거장이 있는 마을로 자주 나온다. 몽실이는 어린 몸으로 기차를 타고 댓골과 노루실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우여곡절을 겪는다. 노루실에서 운산역까지는 2km지만 의성역에서 댓골까지는 20km다. 걸어가면 평균 5시간이다. 책에는 의성역이 운산역 보다 작은 역으로 묘사되어 있다.

1954년 봄, 몽실이가 아버지 정씨 병환을 고치려고 부산으로 갔던 ‘4년 전에 독일 천주교인들이 세웠다는 자선병원’은 성분도자선병원(동구 초량동)이다. 연길에서 피난을 내려왔던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운영했다. 여기서 발행한 사료집 『은혜의 60년』에는 ‘매일 1,000여 명의 환자들이 원근각지에서 운집’했다고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몽실 아버지 정씨는 보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현관을 코앞에 두고 객사하고 만다. 이 병원은 성분도병원으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성모병원(남구 용호동)이 되었다. 초량동에는 성분도병원 건물만 빈 채로 남아 있다. 초량동은 권정생의 이모가 살았다. 소년 권정생이 서점 점원으로 일하며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안상학.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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