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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정

추모시 - 박남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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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99회 작성일 11-03-0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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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종소리가 그립다

     - 권정생 선생님 1주기 추모영전에 바칩니다

                                        

                                                 박남준


거스름 돈, 주머니에 넣은 동전이 흔들릴 때면

이명처럼 어디선가 누가 종을 치는가

애기똥풀이 필 때면

흰씀바귀꽃 목 긴 꽃그늘이 바람에 흔들릴 때면

낮은 곳으로 마른 대지를 적시며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엎드려 흐르는 강물

강물을 따라 걷다가 당신이 거기에 있었음을

아니 바로 강물이었음을

이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당신 떠나시고 시절은 더욱 난장판입니다

미국산 미친 소를 불러들여 이 땅의 밥상머리를 뒤흔들고

돈과 권력에 눈 먼 악귀들이 날뛰며 사람들을 속여서

생명의 어머니, 온 나라의 강물마다 난도질의 삽날을 들이대려 합니다

어지러운 이 봄날 당신의 푸른 종소리가 그립습니다

세상의 종지기였던이여

몽실언니는 만나보셨겠지요 그곳에선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매달던 고무관도 없이 훨훨 자유롭겠지요

마주앉을 자리도 없던 손바닥만 한 쪽방

거기 나란히 앉아 말없는 안부를 나누던 날을 기억합니다

수줍음 많은 소년 같은 미소를,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내리치던 그 곧고 강직한 정신을,

먼데서 온 벗을 마중하거나

혹은 해질 무렵 들풀 우거진 작은 마당을 서성였을

댓돌 위 보랏빛 고무신 한 켤레를

누옥 같은 내 삶의 선반에 얹어놓아 봅니다

살아 세상의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당신을 온통 아낌없이 나누시던

아름답고 깨끗한 가난을 떠 올립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건강한 스물다섯 청년의 몸으로

벌벌 떨지 않고 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연분홍빛 소원도 말입니다


꽃과 나무들의 초록으로 환한 오월

인디언들은 오월을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 생각나는 달이라 했다지요

오래오래 생각나겠지요

오래오래 당신의 손 때 남겨놓은 것들 향기롭겠지요

오래오래 아주 오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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