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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정

철상 이후 가진 간담회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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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92회 작성일 11-03-0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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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맹보명

 

지난 7월 3일 ‘撤床’을 마치고 유언장 집행인 세 분과 마을 주민, 내빈 등 모두 쉰 분 정도가 마을 건너편 황우촌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이쪽저쪽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있어, 20시 10분부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적확히 토씨까지 틀리지 않게 쓸 수는 없고, 대강 아래에 개요를 정리했습니다. (정리 김만동)


사회(안상학) : 이렇게 세 분을 모시고 모인 김에 그간 궁금하게 생각하시던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기탄없이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자 1 : 집은 보존하기로 결정됐나요?


사회(안상학) : 네. 세 분 유언장 집행인께서 그렇게 결정하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미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질문자 1 : 그렇다면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방법이라든지, 계획은 서 있나요?


정호경 신부 : <오마이뉴스>에 올린 문서가 여기 있으니(가방에서 꺼내 사회자에게 건네줌) 이 자리에서 읽고 궁금한 게 있으면 보충하기로 하지요. 그, 집을 보존하는 문제는 이미 우리가 보존하기로 결정은 했습니다만,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보다 돌아가시고 나서 더 관심이 깊어진 것 같아요? 사람이 안 산다고 아무도 안 찾아오면 흉가가 될 거고 하니까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자, 읽으세요.(사회자, 마침 실내로 들어오는 차영민 선생에게 낭독을 부탁하고, 차영민 선생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낭독함.)


사회(안상학) : 더 질문 있으십니까?(아무도 별 말이 없자,)


정호경 신부 : 선생님 유언장에 보면 북한, 아프리카, 네팔, 중동 등의 고통 받는 어린이를 위해서 써달라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오늘 우리 유언장 공동 집행인 세 명이 공익재단법인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유언장에 있듯이 어깨동무나 한겨레재단 등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최완택 목사님과 박연철 변호사님께서 사정을 알아본 결과 선생님의 뜻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단체라고 볼 수 없는 점이 있어서 공익재단을 설립하기로, 그렇게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자신이 없다고 그랬는데, 우리 씩씩한 변호사님께서 그렇게 추진하시기로 해서 우리가 함께 믿고 해나가기로 했습니다.


질문자 2 : 발표 안 된 원고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이 있습니까?


최완택 목사 : 우리가 또 무슨 이야기를 했냐 하면, 재단 안에 출판사가 생겨서 앞으로 전집도 나올 수 있도록 하기로 했습니다. 80년대에 옛날이야기를 제게 보낸 게 있고, 일본 아이누 전설(?)을 번역한 것도 있고, 지금 당장이라도 책 세 권 정도는 금방 낼 수 있습니다. 안심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정호경 신부 : 우리가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발표할 것은 단계적으로 발표를 하겠습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면 거기서 서로 소통하기로 하지요. 좋아하시는 분이 늘어나고 그럴수록 권 선생님의 정신도 더 깊어질 겁니다. 홈페이지에 공개할 것도 좀 당겨서 할 수도 있고, 유품에 관한 것도 유품 정리위원도 있고, 우리 3인 모임도 있고 단계적으로 결정을 해서 할 테니,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일을 하면서 외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겠지만, 서로 도와가면서 협력을 해야지, 쥐뿔도 모르면서 밖에서 피곤하게만 하는 것은 권 선생님에게도 죄입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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