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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 청소년 소설 『그림자를 벗는 꽃』독후감(박연철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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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4회 작성일 22-01-1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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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권정생어린이 문화재단 이사 이셨던 안학수 시인의 청소년 소설 『그림자를 벗는 꽃』 독후감을 명예이사장님 이신 박연철 변호사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전 안학수 시인을 뵐때마다. 영혼이 맑고 따뜻하신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모습엔 권정생선생님을 떠올리곤 합니다.  

지금이 한반도는 진보와 보수로 편가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논리도 없이, 서로간 폄훼와 욕설과 증오만 난무 합니다.

안학수 시인의 『그림자를 벗는 꽃』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화해를 담고 있습니다. 

박연철 명예이사장님의 독후감 일부이다. 독후감 전체는 첨부파일에 있습니다.  

                  (관리자)


(독후감) 그림자를 벗는 꽃 ( 청소년 역사소설 ) : 박연철

작은숲출판사 2021. 11.22. 초판 제1

저자 안학수 : 책 표지에 소개된 내용 그대로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대일문학상, 서울문화재단 개인창작집 공모상을 수상했고, 2013년 권정생 창작기금을 수혜했다. 동시집으로 < 박하사탕 한 봉지> < 낙지네 개흙 잔치> < 부슬비 내리던 장날 > < 아주 특별한 손님> < 안학수 동시선집 >, 장편소설로 < 하늘까지 75센티미터 > 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원이다.

 

이 책은 3부작이다.

 

1 부 는 해방전후, 2부는 한국전쟁, 3부는 분단이후. 대상기간이 일제 강점기부터 세월호 침몰 이후까지 걸쳐 있다.

 주인공은 두 사람, 할아버지 천도윤, 손자 천인겸,

 할아버지는 그의 묘비명으로 그 생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의 묘비명( 127,28 )에는,

애국열사 천도윤 선생- 조국의 하나됨과 민족의 앞날을 위해 한 줄기 빛으로 한결 변함없는 의지를 지켜 낸 그 장하신 삶을 마치시고 여기 고이 잠드시다“ ( 묘비 앞쪽)

 

신념의 강자 천도윤 선생 께서는 193215일 충남 양천시 부린면 상감리에서 태어 나셨다. 인생을 분단된 조국 통일을 위해 강철같은 의지로 활동하셨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시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시다 오랜 옥고를 치르셨다. 1954년 권순덕 여사를 만나 요섭 동섭 형제를 슬하에 두셨으며, 선생의 고귀한 뜻을 우리들에게 남기시고 201469일 고이 잠드시었다 “ ( 묘비 뒤쪽 )

 

손자 천인겸은,

 

< 1997년경 47세의 아버지 천요섭과 어머니 지선화 ( 그녀의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베트남 국적인 인도여성 ) 사이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1998년경 의문사 하였고, 어머니는 그 즈음 가정을 떠나 돌아오지 못하였기 때문에, 영 유아 시절부터 조부모 천도윤과 권순덕의 슬하에서 자라났다.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집요한 꿈을 가지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맹렬히 연습하여 고교졸업 무렵에는 프로팀에서 스카우트 하려 할 정도로 유망한 축구선수로까지 떠올라 있다. >

 

이 책은, 두 개의 소설이 합쳐졌다고들 한다.

 

할아버지 천도윤의 파란 많은 생애와 손자 천인겸의 꿈을 쫒는 청소년 의 삶, 할아버지의 생애는 역사적 배경이 되어 있고, 손자의 삶은 요즈음 열정적인 운동선수 지망생의 모습이다.

 

할아버지의 생애를 보면서,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당시 국내의 부일적(附日的) , 해외의 독립운동, 해방전후와 6.25 전쟁 사이에 벌어지는 사상적 대립, 건국지표의 차이, 여순, 제주 4.3 사건 6.25전쟁으로 인한 남북의 분열, 보도연맹 사건, 반공포로의 석방( 또는 탈출), 수많은 가정의 파괴와 이산 등이 작품 가운데 담겨 있다.

 

지금은, 역사적 사실의 연구가 상당히 깊어져서,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와 자료를 획득하여 역사적 인물과 행적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으로 균형 잡힌 시각으로 할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한 인간의 입장에서, 남과 북의 어느 편에 속하게 되느냐에 관하여 그 계기에 대한 성찰도 가능하게 된 것 같다. 할아버지 세대에는 너나없이 피해자가 아니었던가, 한 가족이언만 복선적이고 운명적인 비극에 휩싸인 가정이 너무나 많았다.

 

천도윤은 이씨가 집성촌인 산간마을(상감마을)에 거주하는 상민(常民)집안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소작을 지어 왔다. 아버지 천장돌은 일제에 강제징용을 나갔다가 독립군에 합류하여 해방 후에야 돌아 왔다. 다행히 천도윤은 그 마을의 상록수와 같은 이동학 선생으로부터 개명된 민족교육을 받게 되어 눈과 마음이 열려가고 있었다. 이동학은 지식인으로서 민주, 평등, 평화를 지향하는 건실한 인사였고, ‘민주학당을 세워 마을의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이승만 정부에서는 그와 같이 활동하는 이동학을 좌경으로 보고 주시하였다. 여순, 4.3 사건을 겪으며 이승만 정부에 대하여 비판적인 이동학이 남로당, 빨찌산의 활동을 은밀히 지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좌우의 대립으로 잔악한 살상이 일어나는 것에 대하여는 어느 쪽에도 찬성하지 아니하였다. 상감마을에서도 보도연맹에 가입시킨 이가 여럿 있었는데 천도윤의 아버지 천장돌도 그에 속하였다.

 

보도연맹원들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곧 집단학살 당하였다. 천도윤은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죽창에 찔린 목과 가슴에서 솟아나는 피로 온몸을 검붉게 적시고 있는 아버지 천장돌을부여안고 억울해서 못 감은 아버지 천장돌의 눈을 감겨주며, 혼절하고 말 것처럼 자지러지게 통곡하였다( 222 ). 이동학 선생은 보도연맹의 위험성을 사전에 감지하고 자신과 제자 박철묵, 천도윤은 가입하지 않았는데, 그는 사전 검속되어 대전형무소에 이송된 후 그곳에서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일들이 천도윤, 이동학의 딸 이하경 들이 인민군이 상감마을에 진입하자 인민군에 편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천도윤은 인민군으로 싸우다가 포로가 되어 거제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기회에 수용소를 탈출하려다가 붙잡혔다가 제네바협약에 따라 1954127일 석방되었다. 그는 북쪽이나 제3국을 택하지 아니하고 고향과 가족이 있는 남쪽을 택한 것이다.

 

그 사이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천도윤을 기다리다가 극우적 특수대에 의해 장살(杖殺)되고, 치매가 된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고향집은 흔 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남한 천지에 빨갱이딱지 붙은 이가 몸 붙일 곳은 어디에도 없는 듯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천도윤은 가정을 이루었다 ( 393 ). 권순덕 과의 사이에 친자식은 없었지만 전쟁통에 영아로 홀로 남은 것을 거둔 천요섭을 큰 아들로, 순덕이 성폭행을 당해 낳은 천동섭을 둘째 아들로 입적하여 한 가정을 이루었다. ‘ 서류상으로만 부부로 피도 섞지 않은 아이까지, 참으로 기이한 가정이었으나, 천도윤 권순덕은 부모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였다.

 

그런데, 이하경이, 그녀의 어머니를 대동하고 월북하기 위하여, 그리고 천도윤과 접선하여 그를 남쪽의 연락원으로 삼기 위하여 아주 잠깐 방문하여 천도윤에게 돈과 암호 해독문을 주고 북한방송 주파수를 가르쳐 주고 떠난 직후 적발되어 간첩죄로 징역 20년의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된다.

 

천도윤의 아들이 된 요섭, 동섭은 빨갱이에다 비전향장기수의 아들로서 온갖 사회적 불이익을 받으면서 신산하게 살아간다. 천도윤과 권순덕이 정식으로 부부가 되기로 한 것은 천도윤이 이하경과 정혼한 것을 잊기로 한 1960년대 초에 이르러서였다( 3110 , 119 ). 천도윤은 5년 복역 후 4.19 의거 후 가석방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75년 유신독재정권에서 비상계엄령 아래 사회안전법을 공포하고, 가석방되었던 비전향장기수들을 모두 다시 잡아들여 보안감호처분을 하였다. 그해는 월남이 패망하여 남한정권도 도미노 공산화 현상을 염려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14,5년을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해 온 가석방자를 보안감호조치한 것은 극도의 인권유린이었다.

 

천도윤은 세상에 두드러진 좌익운동가는 아니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양심과 경험에 따라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수용하지 않을 뿐이었다. 천도윤은 끝내 전향하지 않은 비전향장기수로서 잔 형기 15년을 다 채우고 1990년에 만기 출소하였다. 그의 나이 쉰일곱. 청장년의 시기는 다 지나가 버렸다. 그 부분의 제목이 청춘을 빼앗긴 만기출소라 되어 있지만 일평생을 다 앗아가 버렸다 해야 할 것이다.

 

수감기간 이외의 기간 동안의 사회생활은 빨갱이는 남한사회에서 어떻게 빌붙어 살아가야 하는가를 쓰디쓰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와 그의 가족을 향하여 뻗쳐 주는 인정과 도움의 손길이 어딘가에는 없지 않았다. 동천양조장을 경영하던 천성배와 복역하느라 근 20년이 지났는데도 그를 알아보는 그의 아들 상우, 교도관 민경호, 날일 하던 명태보,

 

천도윤과 대립되는 인물로는 이주동이 나온다. 그는 시골 유지, 지주, 참봉댁의 귀한 손자이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화된 삶을

살았다. 산골에서는, 일제하에서도, 마을 내에서의 봉건적 질서가 그대로 유지되어 이주동가는 천하디 천한천가놈들 위에서 그들을 억누르며 살아 왔다. 그런 그도, 남북이 번갈아 마을을 점령하는 와중에 할머니는 인민군에 처형당하고 또 전쟁 중에 그만 젊은 아내를 미군 폭격으로 잃고 갓 난 아들은 북괴군이 데려가 버리고 말았다는 전언만 들었다. 625로 인한 그의 상처는 매우 깊었다. 전후(戰後)에 그는 사업을 일으켰던 것 같고, 2000년대에는 화학공장을 운영하는 중견 기업인으로 성장하여 금력의 위세를 부리며 살고 있다. 이 작품의 말미쯤에는 어언 80대 중후반의 노인이 되어 있으나, 그의 봉건적 사고나 물질주의적 독선은 여전하였다.

 

 소년 천인겸의 삶은 가난한 집안에서 돈도 많이 드는 축구반에서 선수생활을 하려니 그 애환이 적지 아니하나, 고집스럽게 이겨 나간다. 저자가 축구선수의 생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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