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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정

弔辭 - 염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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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79회 작성일 11-02-2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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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 영전에

 

 

오늘 우리는 우리 시대의 가장 고결한 영혼과 작별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는 한평생 가난하게 살았고, 비천한 것들 틈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남루해 보이는  삶은 아무런 가감 없이 그 자체로서 이 시대의 불의와 타락에 대한 무언의 질타였고, 우리들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양심에의 살아 있는 호소였습니다.

  그는 생전에 동화와 소설, 시와 수필 등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써서 발표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그를 존경해 왔고 앞으로 그를 그리워하게 될 사람들에게 그의 이러한 문필업적들은 오래도록 위로와 용기를, 또 가르침과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어느 것이나 절실한 울림을 뿜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 비할 바 없는 삶, 거의 성자(聖者)의 후광에 둘러싸인 듯한 그의 흉내낼 수 없는 삶에 비하면 빙산(氷山)의 드러난 부분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그가 이 세속의 삶을 마감하였고, 오늘 우리는 그를 보내기 위하여 여기 모였습니다. 그의 이름 권정생, 이제 그 이름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슬픔과 두려움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지상의 평화와 통일을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강자들의 폭력과 파괴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아니 사람들뿐 아니라 벌레와 새와 쥐와 개구리, 세상의 모든 약자들에게 진실한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존재를 가리키는 영원한 기호로 되었습니다.

  나는 권정생 선생의 팍팍했던 삶의 역정을 여기서 굳이 회상하지 않겠습니다. 『강아지똥』『몽실언니』『한티재하늘』『우리들의 하느님』기타 여러 저서들의 문학적 감동과 예언자적 지혜 또한 나의 비평적 언급 이전에 수많은 독자들의 가슴의 실감이 증명하는 바입니다. 다만 나는 그의 생애의 출발지점으로 잠깐 돌아가 보려고 합니다. 알다시피 권정생 선생은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곳을 그는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흘러들어와 모여사는 빈민가 사람들의 가족구성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골목길 끄트머리 노리코네 아버지는 조선사람, 어머니는 일본여자, 노리코는 고아원에서 데려온 딸이었다. 건너집 미치코는 주워다 키운 아이고 동생 기미코는 조선 아버지와 일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고 우리 앞집 일본인 부부도 양딸을 데리고 살았다. 한 집 건너 경순이는 관동지진 때 부모를 잃고 거기서 식모살이처럼 얹혀살고 있었다." 권선생 자신은 헌옷장수집 뒷방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그의 어머니가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이때 나는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 따뜻한 촉감은 평생을 잊을 수 없다"는 말로 당시를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도시의 빈민가, 그 소외된 삶의 터전을 생명의 온기가 넘치는 낙원으로 승화시키는 마음이야말로 바로 『강아지똥』의 메시지이고 그의 문학의 뿌리이며 권정생 선생의 70년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값진 선물일 것입니다.

  권정생 선생님, 당신의 일생은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가장 소박하고 가장 고귀한 정신의 완성입니다. 당신의 떠나는 영혼 앞에 모인 우리들은 당신과 한 하늘 아래 숨쉬었다는 기쁨을 간직하고 이제 흩어지렵니다. 그리고 당신의 삶의 모습을 세상에 전하겠습니다. 이제 모든 짐을 내려놓고 부디 안식에 드소서.

 

2007년 5월 20일

염무웅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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