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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정

추모의 편지 - 정란희(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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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34회 작성일 11-03-0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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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생 선생님께



  선생님이 살아생전 보듬고 사랑해준 이 땅에 계절이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다신 안 올 것처럼 맵차던 계절도 가고, 다시 생명을 잉태하고 키울 어머니 같은 대지에 푸릇함이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 산하에 숱한 일들이 일어나고, 퍼지고, 사그라지길 되풀이하면서 선생님을 보낸 지 두 해가 지났네요.

  “어리다는 것은 정직하고 용감하다는 말이야. 이 용감한 이들을 위해 글을 써야 하지. 춥고 그늘진 곳에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조근조근 말씀하시던 선생님이 그리워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전쟁과 가난의 얼음칼날 위에서도 잊지 않았던 어린이 사랑을,

  평생 병마와 함께 하면서도 늘 감사하고 자유로웠던 정신 세계를,

  낮은 곳에 머무르면서도 가장 높이 보여주신 문학 세계를,

  마음에 담고자 왔습니다.

  많은 이들은 선생님의 작품을 통해 ‘참 사랑’을 배운답니다. 어른들의 무관심으로 구석으로 몰린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난과 폭력으로 희망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들려줘야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깨우치게 된답니다. 똘배를 통해, 몽실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먹히는 물고기를 통해, 강아지똥을 통해 참 사랑을 알아간답니다.

  선생님께서는 똑같으면서도 아주 다른 등장인물들을 통해 아픔을 사랑으로 바꾸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아야 세상에 당당할 수 있으며 타인으로부터 온전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알려주셨습니다. 질긴 생명력을 가진 인물이어야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어린이들에게는 후했지만 당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했던 선생님의 삶이 후배작가들이 가야 할 방향을 조용히 일러주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께서는 아시는지요.

  

일직면 조탑리 빌뱅이 언덕을 가면 지금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선생님, 자상한 눈빛으로 우리를 맞아줄 것 같은 선생님. 하지만 선생님은 이곳이 아닌 그곳에 계십니다. 선생님이 어린이들을 늘 그리워하신 것처럼 우리도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따뜻하게 살겠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 이생에서 허락지 않았던 건강을 그곳에서 마음껏 누리시고 어여쁜 이웃들과 함께 영겁의 행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2009. 5. 16.      정란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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