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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떼기


 빼떼기 / 권정생 지음, 김환영 그림 / 창비


‘빼떼기가 순진이네 집에서 일 년 남짓 살다가 죽은 이야기는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그림책 ‘빼떼기’의 첫 문장이다. ‘빼떼기’가 있는 자리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다 해도 어울릴 정도로 작가 권정생의 삶은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안타까운 삶이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병아리 빼떼기는 어릴 때 불에 데어 발톱이며 솜털이며 다 잃었다. 빼딱하게 걸어서 빼떼기다. 아픈 몸으로 바가지 안에서 혼자 자고 걸음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면서도 씩씩하게 잘 자라난다. 세상의 서러운 이들과 버려진 생명들을 사랑했고 스스로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이겨냈던 권정생 작가 자신의 삶이 투영된 이야기다. 지난 17일은 그의 기일이었고 ‘빼떼기’는 권정생 10주기 추모 그림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김환영 작가의 필생의 역작으로서 더욱 오래 기억될 것이다. 곧 죽을 줄 알았던 빼떼기가 순진이네 가족과 이웃의 돌봄 속에 생명으로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다시 서는 하나하나의 장면들은 글의 의미를 뛰어넘는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고개를 외로 꼬고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는 빼떼기의 얼굴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약자로 자각하게 되는 순간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러나 혼자 닭장 바닥에서 자고 횃대 아래로 다른 닭들의 똥을 맞으면서도 굴하지 않는 빼떼기는 약하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는 의지의 상징이다. 

그림책 ‘빼떼기’의 출발은 권정생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도 전인, 11년 전 가평 장터에서부터다. 김환영 작가는 빼떼기를 그려보려고 암탉과 병아리를 사온 적이 있다. 그때 세운 뜻이 오랜 세월 단단히 머물다가 지난 해 다시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 병아리를 키우고 화판을 바로 세우고 붓을 든다. 주인공 빼떼기가 푸드덕 푸드덕 몸부림치는 것처럼 사람들의 비명이 턱 밑까지 차오르던 가을과 겨울, 그의 화폭에서 빼떼기가 당당한 몸체를 찾아갔다. 그리고 빼떼기는 그림책으로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난다.

‘빼떼기가 세상에 다시 와서 좋은 친구들 많이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김환영 작가가 이 책의 판권면에 자필로 쓴 문장이다. 분단의 아픔 속에서 스러져간 작고 약한 생명들도, 5·18의 무고하고 정의로운 영혼들도, 잊을 수 없는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들도 모두 돌아와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김지은 어린이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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